[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문경서 대째 가업 잇는 도예가 김선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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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Comments 1,573 Views 22-04-06 11:17본문
“흙과 불로 빚는 도자기 농사 … 장작가마가 생명”
불 넣을 때마다 며칠 밤 꼬박 새워
전통 고수하면서 새로운 방식 추구
붉은 색 내는 경명진사 작품 이어
우둘투둘한 ‘댓잎도자기’도 선봬
휴식의 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문경 도자기는 흙과 나무가 교통이 좋은 이 지역 특성으로 수백 년에 걸친 도예명가를 배출케 했다.
최근 1박2일의 짧은 문경 여행길에 옛길 전문가와 도예가 2인을 만났다.
“선대부터 내려오는 가업을 잇는 일이 때로는 힘이 들지만 자부심도 적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이 농사짓는 것처럼 저는 도자기 농사를 짓습니다. 늘 스스로 수백년 이어져 온 찻사발의 예술혼을 잘 살려 한다고 다짐합니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 갈평리 관음요(觀音窯)에서 만난 도예가 김선식(44)씨는 내로라하는 도예가 40여명이 포진한 도자기의 고장 문경에서도 대표적인 도예가다. 8남매 중 막내이면서도 드물게도 8대째 가업을 잇는 그의 집안은 대표적인 도자기 가문이다. 그를 비롯해 중요무형문화재 사기장인 숙부(叔父) 김정옥씨와 그 아들 경식씨, 백부(伯父) 김천만씨의 아들 영식·윤식씨도 함께 가업인 도자기를 빚고 있다.
고향을 지키며 도공의 대를 잇는 김씨의 일상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물레를 차고 찻사발을 만들며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몰두한다. 작업량도 많다. 다른 도예인들이 1년에 3∼4번 가마에 불을 때 작품을 만들 때 그는 10번 이상 불을 땐다. 그가 얘기하는 불은 기초단계인 초벌구이를 제외한, 작품이 완성되는 재벌구이 과정을 말한다. 불을 넣으면 며칠 밤을 꼬박 새워가며 지켜보고 조절해야 한다. 그래서 한 번 불을 넣을 때마다 힘들고 지친다. 때문에 쉽게 작업할 수 있는 전기가마의 유혹도 적지 않지만 전통 장작가마에서 구워낸 작품과는 질적인 차이가 커 스스로 불편함은 고집하고 있다. 2005년에는 ‘전통 도기자 제작기법을 보존하면서도 붉은색을 내는 도예기법을 개발했다’는 공로로 문화예술분야 신지식인으로 선정돼 남다른 노력이 인정을 받기도 했다.
문경을 지키며 8대째 가업을 잇는 도예가 김선식씨가 자신이 빚은 도예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그가 도예에 입문한 것은 1991년. 제 발로 걸어다니면서부터 아버지 김복만(2002년 작고)씨를 따라다니며 도자기 빚는 기술을 배웠지만 도예분야는 낙관을 작품에 찍기 시작한 시점을 입문시기로 삼는다.
그는 스스로 도예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물이 흐르듯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한다.
“농사지을 땅이 없다 보니 아버지로부터 도자기 만드는 일을 농사로 생각하라고 배웠고, 그래서 도예가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벼농사를 지으면 1년에 한 번 추수하지만 도자기는 여러 번 추수하는 게 다를 뿐이죠.”
김씨에 따르면 도자기를 빚을 때는 흙과 장작, 불 3가지가 중요하다. 도자기를 빚는 일은 전체 작업의 20%에 불과하다. 흙과 장작, 불이 80%다. 특히 그가 신경 쓰는 것은 장작이다. 장작은 소나무만 쓰는데 소나무가 점점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10년 후를 내다보고 작품 수익금의 대부분을 나무를 마련하는 데 쓴다.
김씨 도예 작품의 바탕은 법고창신(法古創新)으로 통한다. 선대의 도예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그만의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는 것. 그의 가문은 대대로 청화백자를 주로 만들었지만 그는 2000년대에 들어 경명주사로 빨간색을 내는 경명진사란 작품을 빗고, 우둘투둘한 질감의 댓잎도자기를 잇달아 선보였다. 최근에는 3중 유약을 써 세련미가 넘치는 작품을 내놓아 수집가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도예가로서 고향에서 조상의 도자기 예술혼을 이어간다는 것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한다”는 그는 문경을 찾을 때는 꼭 한번 문경도자기의 제작과정이 있는 도자기 전시관과 자신의 관음요를 들러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문경=글·사진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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